암수술은 의사가 환자의 배를 열고 사전 검사에서 암으로 확인된 조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드물지만 수술 도중 예상치 못한 암 조직이 발견되기도 한다. 의사는 조직을 조금 떼어내 병리과에 긴급 검사를 맡긴다.

병리과는 조직을 아주 얇게 자르고, 세포의 모양을 알 수 있게 염색한다. 양초 성분인 파라핀으로 박편 조직을 고정하고 현미경을 보며 암 조직이 맞는지 확인한다. 여기까지 6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의사는 수술을 마칠 수 없다. 환자는 마취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

큐리오시스는 국내 기술로 조직검사에 필요한 시간을 2시간 이내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검사 절차 대부분을 자동화하고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인 염색도 생략했다. 덕분에 수술도 더 빨리 끝난다. 그간 해외 기술에 의존해왔던 조직검사 장비를 국산화한 것은 물론, 성능도 외국과 경쟁할 수준으로 개선한 것이다.

◇ 염색 대신 여러 파장대 빛으로 조직검사

큐리오시스는 2015년 창업한 실험 장비 자동화 기업이다. 기계공학과 광학 지식을 기반으로 실험실에서 세포 수를 세는 셀카운터나 세포를 자동 촬영하는 현미경 같은 제품을 선보였다. 실험 자동화 장비는 연구실에서 인력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최근 회사는 병원에서 의료진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자동화 장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자동화 조직검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전 세계 병리진단 장치 시장 규모는 2022년 94억달러(약 13조원)에서 매년 6.38% 성장해 2029년 144억달러(약 2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큐리오시스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지능형 병리진단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해외 기업이 독점하던 병리진단 장비 시장에 국산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다중모드 광영상’ 기술도 적용해 성능을 개선했다.

조직검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던 것은 ‘다중모드 광영상 기술’을 활용한 무염색 검사 덕분이다. 암 조직을 떼어내 아주 얇게 박편을 만들면 투명해져 눈으로는 진단하기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세포의 각 부위에 색을 입히는 염색이 필요하다. 염색은 3~4시간 걸린다. 다중모드 광영상 기술은 여러 파장의 빛을 쏘아 염색 없이 세포를 확인할 수 있다.

빛은 파장에 따라 인체 조직에 투과하는 깊이가 다르다. 동시에 여러 파장을 이용하고 이 정보를 디지털로 분석하면 인체 조직을 3차원(D)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하나의 파장을 사용했을 때는 염색을 해야 볼 수 있던 세포 모양, 지방 구성 같은 정보를 여러 파장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조직검사 장비는 최근 병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으나, 국산 제품은 없었다.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만큼 최적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큐리오시스는 실험 자동화 장비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윤호영 큐리오시스 대표는 “큐리오시스는 국내 의료기기 업체 중 카메라를 직접 만드는 유일한 기업이어서 빛을 다루는 기술력이 있다”며 “테슬라가 도입한 기가프레스와 같은 사출 공정으로 제조 단가도 크게 절감했다”고 소개했다.

큐리오시스는 먼저 염색된 조직 박편을 자동 촬영하는 디지털 병리진단 장치를 개발해 국내 병원 네 곳에 납품했다. 한 번에 조직 샘플 320개를 데이터화할 수 있다.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시간도 3시간 30분으로, 다른 장비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 말에는 염색이 필요 없는 다중모드 광영상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한다. 목표는 출시 후 3년 이내 매출 2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국내 병원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해외에서는 연구기관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미 33국에 실험 자동화 장비를 수출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기존 영업망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조직 진단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 “의료 정보 모두 디지털화 병원 온다”

“디지털 조직검사 장비 하나만 봤을 때는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 전체의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과정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기술입니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 큐리오시스 본사에서 만난 윤호영 대표는 지능형 조직검사 장비 ‘MSP320′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MEP320은 큐리오시스가 지난해 출시한 국내 최초의 국산 디지털 조직검사 장비다. 지난해 말 국가기술표준원이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신기술과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제품에 부여하는 ‘NEP’ 정부 인증도 받았다.

윤 대표는 “국내에서 이전에 이뤄지던 조직검사 기술은 영상 판독 소프트웨어가 대부분이었다”며 “해외에서 새로운 이미징 기술과 시스템 개발이 이뤄졌던 것에 비해서는 한국은 연구 수준이 낮았던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첫 조직검사 장비가 출시되면서 이미 단국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충남대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 납품됐다. 해외는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한 연구기관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큐리오시스의 주력 제품인 실험 자동화 장비와 더해 지난해에만 20억원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현재는 해외 병원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절차도 밟고 있다.

큐리오시스가 도전한 시장은 이미 해외 제품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이지만 자신있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므로 기술력이 있다면 충분히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윤 대표는 “과거에 필름으로 보던 X선 사진을 이제는 디지털로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머지않아 병원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진단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큐리오시스의 디지털 조직검사 장치 개발에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범부처 사업단은 지적재산권(IP), 투자, 임상통계교육으로 실질적인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줬다. 윤 대표는 “단순히 연구비를 지원하고 결과를 심사하는 기존 과제와 달리 사업화까지 성공시켜주기 위해 다각적으로 지원을 받았다”며 “FDA 허가를 위한 인증 과제처럼 범부처 사업단의 지원은 지금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국산 의료 기술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자동차 기업이 있는 나라는 10국에 불과하다”며 “자동차 산업이 없는 나라의 국민들은 자동차를 아주 비싼 가격에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을 위해 국산 의료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당장 수익도 중요하지만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좋은 사례를 제시하고 싶었다”며 “큐리오시스의 도전이 의료기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bio/2024/06/30/W7VML3SFRRGCHPLZBP3IW62OGE/?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